유럽 여행 후기

[이탈리아 여행 #3] 피렌체에서 피사 가는 법, 피사의 사탑 예약, 기적의 광장, 토스카나 당일치기

gin4 2026. 2. 21. 05:03

세상에는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마주했을 때의 괴리가 유독 큰 장소들이 있습니다. 제게 이탈리아의 피사(Pisa) 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SNS에서 봤을 법한, '기울어진 탑'을 밀고 있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포즈들. 하지만 실제로 '기적의 광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장난기 섞인 상상은 기묘한 경외감으로 변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상식을 벗어난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8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중세의 고집과 그 속에 담긴 피렌체-피사 간의 역사적 맥락까지. 피사는 단순히 '사진 한 장'을 위해 소비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도시입니다.


1. 피렌체에서 피사로 떠나는 아침: 기차 여행의 모든 것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Firenze S.M.N) 역의 아침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피사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탈리아 철도청(Trenitalia)의 지역 열차인 '레조날레(Regionale)'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차표 예매와 플랫폼 찾는 팁

많은 분이 미리 예매를 고민하시는데, 피사행 Regionale 열차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기준 가격이 10.10유로(편도) 내외로 고정되어 있고 좌석 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 내에 널려 있는 빨간색 'Trenitalia' 무인 발권기에서 목적지를 'Pisa Centrale'로 설정하고 구매하면 끝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 피렌체 SMN 역은 플랫폼이 매우 많습니다. 전광판에서 'PISA'를 찾지 마세요. 피사가 종착역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열차 번호를 확인하거나, 최종 목적지가 'Livorno Centrale' 또는 'La Spezia Centrale' 인 열차를 찾으셔야 합니다.

 

Firenze Santa Maria Novella to Pisa Centr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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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칭(Validation), 안 하면 벌금 폭탄입니다

종이 티켓을 구매했다면 플랫폼 입구에 있는 초록색 또는 노란색 펀칭기에 반드시 '각인'을 해야 합니다. 기계에 티켓을 넣으면 '찌익' 소리와 함께 날짜와 시간이 찍히는데, 이걸 잊으면 검표원에게 무임승차로 간주되어 50유로 이상의 현장 벌금을 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QR 티켓은 앱 내에서 'Check-in'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팁: 만약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고 싶다면 'Pisa San Rossore' 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세요. 중앙역보다 사탑에 훨씬 가깝습니다(도보 5분). 하지만 피사 시내를 구경하고 싶다면 중앙역 하차를 추천합니다.


2. 피사 중앙역에서 두오모 광장까지: 도보 여행의 묘미

피사 중앙역에 내리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버스(LAM Rossa 라인)를 타거나, 피사 시내를 가로질러 약 20분 정도 걷는 것입니다. 저는 걷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피사시내의 평화로운 거리 풍경과 주차된 차량들, 그리고 이탈리아 특유의 건물들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피사 시내의 모습입니다.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좁은 골목길 사이로 주차된 차들을 지나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솔페리노 다리(Ponte Solferino) 를 건널 때의 시원한 강바람은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가는 길에 '키스 해링'의 벽화(Tuttomondo)' 를 우연히 발견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으니, 구글 맵에 의존하기보다 때로는 골목의 분위기에 취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입니다.

 

Pisa Centrale to 피사의 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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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침내 마주한 기적의 광장 (Piazza dei Miracoli)

피사의 사탑이 있는 '기적의 광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눈부신 흰 대리석 건물들이 초록색 잔디와 대비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합니다. 멀리서도 그 기울어짐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조금 기운 정도겠지" 싶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수준이었습니다.

맑은 날씨 아래 기울어진 각도가 선명하게 보이는 피사의 사탑 전체 모습

사탑은 현재 약 3.9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합니다. 1173년 착공 직후 지반 침하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이 탑이 800년 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 건축사의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1990년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통해 기울기를 멈췄다고 하니, 우리가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실제로 앞에서 보면 "어떻게 안 넘어지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토양층이 진흙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한쪽이 가라앉은 것이라는데, 역설적으로 그 부드러운 지반 덕분에 지진의 충격을 흡수해 무너지지 않았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떠올리니 자연의 신비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4. 피사의 사탑, 가까이서 보면 더 놀라운 디테일

사탑은 단순히 기운 탑일 뿐만 아니라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하단부의 화려한 대리석 조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섬세한 아치와 기둥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은 중세 피사 공화국의 영광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피사의 사탑 하단 대리석기둥과 섬세한 아치형 조각을 가까이서 본 디테일 컷

기둥 하나하나의 문양과 대리석의 질감을 살펴보세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빛바랜 대리석은 이 탑이 견뎌온 풍파를 말해줍니다.

[실전 팁] 사탑 내부 등반 전 꼭 알아야 할 정보

  • 가방 반입 절대 불가: 사탑 내부 계단은 매우 좁고 가파릅니다. 그래서 핸드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가방 반입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사탑 뒤편에 있는 노란색 건물의 'Cloakroom'에 무료로 짐을 맡겨야 합니다. (사탑 입장권 지참 필수)
  • 온라인 예약은 생존이다: 사탑 등반은 15분 단위로 인원을 제한합니다. 현장 예매는 당일권이 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최소 20일 전 공식 홈페이지(opapisa.it)에서 예약하시길 권합니다. 가격은 통합권 기준 약 27유로입니다.
  • 무릎과 발목 조심: 294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탑이 기울어져 있다 보니 올라갈 때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기괴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됩니다.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평형감각이 예민하신 분들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5. 피사 여행의 하이라이트: 원근법 인증샷 정복하기

피사에 와서 이 사진을 안 찍는다면 여행을 헛한 것이나 다름없죠. 광장 도처에는 사탑을 밀고, 당기고, 발로 차는 기상천외한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피사의 사탑 그 안에 가두는 듯한 재미있는 원근법 사진

저는 조금 색다르게 손가락으로 사탑을 튕겨내 보았습니다. 옆에 보이는 두오모 성당의 돔과 함께 담으니 구도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손바닥으로 피사의 사탑을 받치거나 밀고 있는 듯한 익살스러운 포즈의 여행 사진

가장 클래식한 포즈인 '사탑 뽑기'도 시도했습니다.

팁 : "여기 보세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이미 주변 모두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어 민망함은 금세 사라집니다. 다만, 사진 촬영에 열중하다 보면 바닥에 놓아둔 가방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일행이 짐을 지켜야 합니다.


6. 사탑 주변의 또 다른 보물들

피사의 사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옆에 있는 두오모(성당)와 세례당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큰 실수입니다.

광장 곳곳에는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천사 조각상 너머로 보이는 사탑의 모습은 마치 중세 시대의 화보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 피사 두오모: 사탑 티켓이 있다면 성당 입장은 무료입니다. 다만, 인원 제한 때문에 무료 티켓(0유로 티켓)을 매표소에서 따로 수령하거나 사탑 티켓 스캔 후 입장 시간을 지정받아야 합니다. 내부 천장의 화려한 금박 장식과 갈릴레이가 진리의 추를 발견했다는 '갈릴레이의 등불'은 꼭 확인하세요.
  • 산 조반니 세례당: 웅장한 돔 형태의 건축물로, 내부의 공명 소리가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매시간 30분마다 직원이 소리를 내어 울림을 시연해 주기도 합니다. 그 천상의 소리는 사탑의 기이함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7. 여행자를 위한 마지막 조언: 실수 예방과 비용 절약

무료 화장실 활용

광장 내 공중화장실은 1유로를 받습니다. 차라리 근처 카페(Bar)에서 1.2유로짜리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카페 화장실을 이용하세요. 이탈리아 문화를 즐기면서 생리 현상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입니다.

소매치기 주의

피사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소매치기가 극성인 곳으로 손꼽힙니다. 특히 기차역에서 광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광장에서 사진 찍는 찰나를 노립니다. 가방은 항상 앞으로 메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올 때는 가방 끈을 꽉 쥐세요.


피사 여행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이 기묘한 탑이 주는 철학적인 울림이 좋았습니다. 쓰러질 듯하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그 모습이 우리네 인생과 닮아 보였거든요. 피렌체에 머무신다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이 기적 같은 건축물을 직접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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