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여행의 밤을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 '와이탄'입니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마천루의 향연은 언제 보아도 압도적이죠. 하지만 그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연안동로(延安東路, Yan'an East Road) 골목으로 살짝 발길을 돌리면, 전혀 다른 공기를 뿜어내는 건물이 하나 나타납니다. 바로 로스트 헤븐(Lost Heaven, 花马天堂) 와이탄점입니다.
이곳은 상해를 찾는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일종의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고, 혹은 분위기가 맛을 압도하는 곳도 있기 마련이죠. 제가 직접 경험한 로스트 헤븐은 '정통 운남 요리의 정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상해라는 이국적인 도시에서 즐기는 세련된 다이닝 경험'에 방점이 찍힌 곳이었습니다. 2026년 현재의 관점에서 이곳을 방문할 가치가 있는지, 솔직하고 상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붉은 어둠 속으로: 공간이 주는 첫인상과 인테리어의 미학
연안동로 17호, 고풍스러운 건물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상해의 현대적인 소음은 단숨에 차단됩니다. 이 건물은 과거 프
랑스계 신문사인 '자익일보'가 사용하던 유서 깊은 곳인데, 그 안에 펼쳐진 풍경은 중국 남서부의 깊은 오지를 연상시킵니다. 로스트 헤븐 와이탄점은 입구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 Tea Horse Road)'의 신비로움을 시각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 듯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집요할 정도로 붉은 톤의 조명과 벽면을 가득 채운 소수민족 양식의 벽화와 자수들입니다. 차마고도 연변에 살던 티베트, 이족, 나시족, 따이족 등 소수민족의 문양과 그림이 공간 곳곳에 어우러져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세련되게 큐레이팅된 '에스닉 갤러리'에 가까웠습니다. 총 330석에 달하는 대규모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조도를 극한으로 낮추어 놓아 옆 테이블과 분리된 듯한 프라이빗한 밀폐감을 줍니다.
메인 다이닝 홀로 들어서면 디테일은 더욱 살아납니다. 의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독특한 문양과 조각들은 이곳이 추구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다만, 실내가 정말 어둡습니다. 노안이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메뉴판을 보려면 휴대폰 조명을 켜야 할 정도입니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70% 이상이다 보니 저녁 피크 타임에는 웅성거리는 소음이 꽤 큰 편입니다. 정갈하고 조용한 담소를 원하신다면 이곳의 분위기가 다소 산만하고 들뜬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식사 전후의 여유: 바(Bar) 구역과 테이블 세팅
로스트 헤븐의 영리한 점은 이곳을 단순한 '식당'이 아닌 '복합 문화 공간'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Bar) 구역이 있습니다.

벽면 전체를 채운 주류 진열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 요소입니다. 실제로 로스트 헤븐은 음식보다 칵테일이나 와인 리스트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로 유명합니다. 운남의 약초나 과일을 활용한 시그니처 칵테일들은 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에 적절하죠. 다이닝 공간 위층에는 루프탑 바도 운영하고 있어, 식사 전후로 야외에서 칵테일을 즐기며 와이탄 인근의 석조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바 자리에 앉아 가볍게 한잔하며 예약을 기다리는 서구권 여행자들의 모습은 이곳이 상해 내에서도 얼마나 '글로벌한' 장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안내받은 테이블은 묵직한 원목의 질감이 살아있었고, 붉은 벨벳 의자는 장시간 식사에도 불편함이 없을 만큼 안락했습니다. 기본 세팅된 식기류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중후함이 느껴졌는데,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모여 '여행 중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 같은 느낌을 완성합니다.
메뉴 분석: 외국인의 입맛에 맞춘 '안전한' 운남 요리
본격적으로 음식을 논해볼까요. 로스트 헤븐은 스스로를 차마고도의 레시피를 계승한 곳이라 자부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곳의 요리는 '향신료에 취약한 외국인들을 위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낸 퓨전 요리' 에 가깝습니다. 정통 운남 요리는 훨씬 더 시큼하고, 훨씬 더 기름지고, 버섯 향이 압도적이지만 이곳은 그 강도를 30% 수준으로 낮춘 느낌입니다.
1. 춘권 (Spring Rolls)

에피타이저로 주문한 춘권은 가장 실패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피의 두께가 얇아 아주 바삭하게 튀겨졌고, 속 재료의 수분감도 적당했습니다. 함께 나온 타마린드 기반 소스는 동남아시아의 풍미를 살짝 가미했는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새콤달콤한 맛이라 거부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와, 이 집만의 비법이 느껴진다" 정도는 아니어도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소리는 절로 나오는 대중적인 맛입니다.
2. 계란 야채 볶음밥 & 타이거 맥주

중국 요리의 기본은 볶음밥이죠. 운남 요리 특유의 향이 강한 메인 요리들을 중화시키기 위해 주문했습니다. 고슬고슬한 식감은 훌륭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과한 편입니다. 이때 구원투수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타이거 맥주입니다. 상해의 후덥지근한 밤공기를 뚫고 온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사실 그 어떤 요리보다 강렬한 해방감을 줍니다. 맥주 관리 상태는 매우 좋아 청량감이 뛰어났습니다.
3. 크리스피 포크 벨리 (Crispy Pork Belly)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주얼 메뉴입니다. 플레이팅은 정말 화려합니다. 하지만 맛은 조금 미묘했습니다. '겉바속촉'의 정석을 기대했으나, 어떤 조각은 껍질이 너무 딱딱해 치아에 부담이 갈 정도였고, 속살의 지방 분포가 고르지 않아 살짝 질긴 감도 있었습니다. 간은 짭조름하니 맥주 안주로 나쁘지 않았지만, 고기 요리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굳이 여기서 이 가격을 주고 먹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4. 운남식 닭고기 요리 (Yunnan Chicken)

이날의 메인이자,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을 법한 메뉴였습니다. 고추와 마늘이 듬뿍 올라가 비주얼은 매우 매워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적당한 칼칼함과 감칠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운남 요리의 특징인 산미(신맛)가 아주 살짝 스쳐 지나가는데, 이게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킥이 됩니다. 닭고기의 선도도 좋았고, 양념이 속까지 잘 배어 있어 볶음밥과 곁들이기에 가장 훌륭했습니다.
실전 방문 가이드: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찾아가는 방법은 황푸구 연안동로 17호입니다. 와이탄의 상징인 황푸강변 건물들과는 한 블록 떨어져 있으니 주의하세요. 지하철 10호선이나 14호선 위위안역(豫园站) 1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입니다.
- 예약은 '생존 전략': 이제는 위챗(WeChat) 미니프로그램 예약이 기본입니다. 주말 저녁 창가 쪽이나 조용한 구석 자리를 원한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당일 방문은 1시간 이상의 웨이팅을 각오해야 합니다.
- 결제 시스템: 외국인들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 해외 카드를 직접 연동해 사용하기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를 네트워크 오류에 대비해 현지에서 통용되는 투어카드(TourCard)를 미리 발급받아 두면 마음이 편합니다.
- 비용의 현실: 2인 방문 시 메인 요리 3개와 주류를 포함하면 약 800위안(한화 약 15만 원) 내외를 예상해야 합니다. 상해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가성비'와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오로지 분위기와 경험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비밀 팁: 2층 창가석이 인기가 많지만, 사실 와이탄의 화려한 마천루 뷰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식사 후 도보 5분 거리의 페리 선착장 근처 산책로로 이동해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동선입니다.
누구에게 추천하고, 누구에게 비추천하는가?
로스트 헤븐 와이탄점은 명확한 장단점을 가진 곳입니다.
- 추천: 상해 여행 중 한 번쯤은 격식 있는 분위기에서 '외국인이 먹기 편한' 이색 요리를 즐기고 싶은 분. 인테리어와 조명이 주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커플 여행자.
- 비추천: 혀 끝을 자극하는 정통 운남 요리의 강렬한 향신료와 로컬의 깊은 맛을 기대하는 미식가. 조용하고 정갈한 식사 환경을 선호하는 분.
결국 이곳은 '맛'보다는 '경험'을 파는 공간입니다. 운남, 미얀마, 태국에 걸친 차마고도의 문화를 서구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포장해 낸 그들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상해의 붉은 밤을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기록하고 싶다면, 로스트 헤븐은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다만, 음식에 대한 기대치는 조금 내려놓고 그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Lost Heaven Bar · 17 Yan'an Rd (E), Waitan, Huangpu, Shanghai, 중국 200002
★★★★☆ · 중국 음식점
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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